임희일(林希逸)의 《장자구의(莊子鬅意)》 번역

임희일(林希逸)의 《장자구의(莊子口義)》 내편 제2편 〈제물론〉 6

gwonju95 2026. 6. 29. 13:24

夫言非吹也,言者有言,其所言者特未定也。果有言邪?其未嘗有言邪?其以爲異於鷇音,亦有辨乎?其無辨乎?

무릇 말(言)은 바람 부는 것(吹)이 아니다. 말하는 자는 나름의 의미를 담아 말을 하는 법이지만, 그 말하는 바는 유독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 과연 말이 존재하는 것인가? 아니면 일찍이 말이 존재한 적이 없는 것인가? 그것이 갓 부화한 새끼 새의 울음소리(鷇音)와 다르다고 여긴다면, 과연 구별할 수 있는 분별이 있는 것인가? 아니면 분별이 없는 것인가?

 

此篇本爲齊物論是非而作,前發爲三籟之論,謂天地之間,凡有聲者皆出於造物,却又引而伸之,演人身皆爲造物所使,紬繹發越,至成心處而後住。自此以下,却是非之論。風之於竅,比竹之聲,吹萬不同,皆聲而已。聲成文而後謂之言,言則非吹比也。所謂言者,皆各言其意也,故曰言者有言,此四字便是是非之論。其所言者,特未定也,謂汝雖有此言,其出於汝耶?其出於造物耶?故曰未定。其言果汝之言邪?其在汝者未嘗有此言,而爲造物所使,遂爲此言邪?鷇者,鳥之初出卵者也。鷇之爲音,未有所知,汝之有言,亦不自知。若以爲異於鷇音,則實不能自異,則以爲與鷇音有分辨乎?無分辨乎?言其實一同,不可得而分辨也。

이 편은 본래 만물(物)을 가지런히 하고 시비(是非, 옳고 그름)를 논하기 위해 지어진 것이다. 앞서 이미 삼뢰(三籟)의 논설을 드러내어 천지 사이에 소리가 있는 것은 모두 조물주에게서 나온다고 하였고, 다시 그것을 확장하여 인간의 몸 또한 모두 조물주에게 부림을 받는 것임을 널리 설명하며 실마리를 찾아내어 마음껏 드러내 밝히다가, '성심(成心)'의 대목에 이르러서야 멈추렀다. 이로부터 이하는 도리어 시비의 논론을 본격적으로 설명한다. 구멍에 부는 바람(천뢰)이나 대나무 관을 나란히 한 소리(인뢰, 퉁소 소리)는 만 가지로 다르게 불어대어 같지 않으나 모두 소리일 뿐이다. 소리가 조리(文)를 이룬 뒤에야 이를 '말(言)'이라 부르니, 말은 단순한 바람 부는 소리에 비할 바가 아니다. 이른바 말이라는 것은 모두 각기 자기의 뜻을 말하는 것이므로 '말하는 자는 말이 있다(言者有言)'고 한 것이니, 이 네 글자가 바로 시비(옳고 그름)의 논설을 가리킨다. '그 말하는 바는 유독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其所言者特未定)'는 것은 당신이 비록 이러한 말을 하더라도 그것이 진짜 당신에게서 나온 것인가, 아니면 조물주에게서 나온 것인가를 뜻하므로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고 한 것이다. 그 말이 과연 당신의 말인가? 당신 자신에게는 본래 일찍이 이러한 말이 없었는데, 조물주에게 부림을 받아 마침내 이러한 말을 하게 된 것이 아닌가?  구(鷇)'란 새가 알에서 처음 나온 것(새끼 새)을 말한다. 새끼 새의 울음소리는 아무런 지식이나 의도 없이 내는 소리이니, 당신이 논란을 벌이며 말을 하는 것 또한 (그 근원을) 스스로 알지 못하는 것과 같다. 만약 새끼 새의 울음소리와 자신의 말이 다르다고 여긴다면 실은 스스로 다를 수가 없으니, 그렇다면 새끼 새의 울음소리와 분별이 있다고 하겠는가, 분별이 없다고 하겠는가? 말하자면 그 실상은 본질적으로 한가지로 같아서 결코 분별해낼 수 없다는 뜻이다.

 

이 글은 말과 시비분별의 근거가 과연 확정될 수 있는가를 묻는 내용입니다.

핵심은 다음과 같습니다.

  • 말은 단순한 바람소리와 달리 의미를 담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 말이 진정 누구에게서 나온 것인지는 확정할 수 없습니다.
  • 사람이 자신의 뜻이라고 여기며 말하는 것도 실제로는 조물주의 작용에 따라 나온 것일 수 있습니다.
  • 따라서 인간의 말과 갓 부화한 새끼 새의 울음소리 사이에 본질적인 차이가 있다고 단정하기 어렵습니다.
  • 결국 시비, 즉 옳고 그름을 가르는 인간의 말과 판단도 확고한 기준을 가진 것이 아니라, 그 근원과 의미가 불분명하다는 점을 말합니다.

한 문장으로 줄이면:
인간의 말과 시비 판단은 스스로 확정된 진리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그 근원과 의미가 불분명하여 새끼 새의 울음소리와 본질적으로 구별하기 어렵다는 내용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