百骸、九竅、六藏, 賅而存焉,吾誰與爲親?汝皆悦之乎?其有私焉?如是皆有爲臣妾乎?其臣妾不足以相治乎?其遞相爲君臣乎?其有真君存焉?如求得其情與不得,無益損乎其真 。
백해(온갖 뼈마디), 구규(아홉 구멍), 육장(여섯 장부)이 다 갖추어져 존재하고 있으니, 나는 누구를 더 친하게 여겨야 하겠는가? 너는 이들을 모두 기뻐하는가? 아니면 사사로이 더 좋아하는 것이 있는가? 이와 같이 이들이 모두 신하와 첩이 되는가? 그 신하와 첩들로는 서로를 다스리기에 부족한가? 아니면 번갈아 가며 서로 군주와 신하가 되는가? 그곳에 참된 군주(真君)가 존재하는가? 만약 그 실상을 찾아내든 찾아내지 못하든 간에, 그 참됨(真)에는 보태지거나 줄어드는 것이 없다.
百骸、九竅、六藏,即人一身之所有者也。此以下又就人身上發明一段,更是奇特。賅者,備也;存,在也。言人之一身,備此而皆在也。吾誰與爲親者,言吾所獨親者誰乎?這一親字,下得極有理。且如人身或有病在手,爲其所苦,則方病之時,手乃爲身之讎也。六根皆然。汝皆悦之乎者,言六根之中皆喜之乎?亦有所私喜乎?且其在身之用,何者爲貴?何者爲賤?如頭癢而手搔,則手者頭之役;望遠而足行,則足者目之役。役者,臣妾也。然而不足以相治者,手足耳目鼻舌互相爲用也。受役者爲臣,役之者爲君,足時乎而用手,手時乎而用足,故曰遞相爲君臣。百骸、九竅、六藏之君臣,既不可得而定名,則心者身之主也,其以心爲君乎?心又不能以自主,而主之者造物,則造物爲真君矣,故曰其有真君存焉。我雖如此推求,欲見到實處,然見得與見不得,其所謂君者,初何加損乎?情,實也,故曰如求得其情與不得,無益損乎其真。
백해(百骸), 구규(九竅), 육장(六藏)은 곧 인간 한 몸이 소유하고 있는 것들이다. 이 이하는 또 인간의 몸을 바탕으로 한 단락의 진리를 밝혀냈으니, 더욱 기특하다. '해(賅)'는 갖추어짐(備)이요, '존(存)'은 있음(在)이다. 인간의 한 몸에 이것들아 모두 갖추어져 있음을 말한다. '나는 누구를 더 친하게 여겨야 하겠는가(吾誰與爲親)'라는 것은 내가 특별히 친하게 대할 자가 누구인가를 말한다. 이 '친(親)' 자 한 글자는 매우 이치에 맞게 쓰였다. 비유하자면 사람의 몸에서 혹 손에 병이 생겨 그로 인해 고통을 받게 된다면, 바야흐로 병든 때에는 손이 곧 몸의 원수(讎)가 됨과 같다. 육근(六根)*이 모두 그러하다. '너는 모두 기뻐하는가(汝皆悦之乎)'라는 것은 육근 중에서 모두를 다 기뻐하는가, 아니면 좀 더 기뻐하는 부위가 따로 있는가와 또한 그것들이 몸에서 쓰일 때, 어떤 것이 귀하고 어떤 것이 천한지를 묻는 것이다. 가령 머리가 가려우면 손이 긁으니 손은 머리의 부림을 받는 자(役)이고, 먼 곳을 바라보려 발이 걸어가니 발은 눈의 부림을 받는 자이다. 부림을 받는 자가 곧 신하와 첩(臣妾)이다. 그러나 서로를 다스리기에 부족하다는 것은 손, 발, 귀, 눈, 코, 혀가 서로 부리거나 부려지면서 교대로 쓰이기 때문이다. 부림을 받는 자가 신하가 되고 부리는 자가 군주가 되는데, 발이 필요할 때 손을 쓰고 손이 필요할 때 발을 쓰므로 '번갈아 가며 서로 군주와 신하가 된다(遞相爲君臣)'고 한 것이다. 백해, 구규, 육장의 군신 관계가 이미 정해진 명분으로 고정될 수 없다면, 마음(心)은 몸의 주인이니 마음을 군주로 삼아야 하겠는가? 마음 또한 스스로 주재하지 못하고 마음을 주재하는 것은 조물주(造物)이니, 조물주가 참된 군주(真君)가 된다. 그러므로 '그곳에 참된 군주가 존재한다(其有真君存焉)'고 한 것이다. 내가 비록 이와 같이 추구하여 확실한 실상(實處)을 보고자 하나, 그것을 보아내든 보아내지 못하든 간에 그 이른바 군주(조물주)라는 존재 자체에는 애초에 무슨 영향이 있겠는가? '정(情)'은 실상(實)이다. 그러므로 '그 실상을 찾아내든 찾아내지 못하든 간에 그 참됨에는 보태지거나 줄어드는 것이 없다(如求得其情與不得,無益損乎其真)'고 한 것이다.
*육근(六根) : 육식(六識)을 낳는 눈, 귀, 코, 혀, 몸, 뜻의 여섯 가지 근원(根源).
- 인간의 몸에는 여러 기관과 기능이 모두 갖추어져 있지만, 그중 어느 하나만을 특별히 더 친하게 여기거나 귀하게 볼 수는 없습니다.
- 손, 발, 눈, 귀, 코, 혀 등은 상황에 따라 서로를 부리기도 하고 부림을 받기도 하므로, 고정된 군주와 신하의 관계가 없습니다.
- 그렇다면 몸의 주인은 마음인가 생각해 볼 수 있지만, 마음 역시 스스로 완전히 주재하지 못합니다.
- 따라서 마음을 넘어선 어떤 근원적 주재자, 곧 참된 군주(真君)가 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 그러나 그 참된 군주의 실상을 사람이 찾아내든 찾아내지 못하든, 그 참됨 자체는 더해지거나 줄어들지 않습니다.
인간의 몸과 마음은 서로 의존하며 고정된 주재자를 찾기 어렵지만, 그 배후에는 변하지 않는 참된 주재 원리가 있으며, 그것은 인간의 인식 여부와 관계없이 그대로 존재한다는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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