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희일(林希逸)의 《장자구의(莊子鬅意)》 번역

임희일(林希逸)의 《장자구의(莊子口義)》 내편 제2편 〈제물론〉 1

gwonju95 2026. 6. 19. 13:52

굵은 글씨는 본문 가는 글씨는 주석

<篇齊物論第二>

物論者,人物之論也,猶言衆論也。齊者,一也,欲合衆論而爲一也。戰國之世,學問不同,更相是非,故莊子以爲不若是非兩忘而歸之自然,此其立名之意也。天籟、地籟、人籟,就聲上起譬也。

< 내편 제물론 제2 >

물론(物論)이란 사람과 사물(人物)에 대한 논론이며, 여러 사람들의 말(衆論)이라는 뜻과 같다. 제(齊)란 하나로 만드는 것(一)이니, 여러 논론을 합하여 하나로 만들고자 하는 것이다. 전국시대에는 학문이 달라 서로 번갈아 옳다 그르다(是非) 하였으므로, 장자는 시비를 둘 다 잊고 자연으로 돌아가는 것이 훨씬 낫다고 여겼으니, 이것이 이 편명을 세운 뜻이다. 천뢰(天籟)·지뢰(地籟)·인뢰(人籟)는 소리를 바탕으로 비유를 한 것이다.

 

南郭子綦隱几而坐,仰天而,㗳焉似喪其耦。顔成子游立侍乎前,曰:何居乎?形固可使如槁木,而心固可使如死灰乎?今之隱几者,非昔之隱几者也。子綦曰:偃,不亦善乎而問之也!今者吾喪我,汝知之乎?

남곽자기(南郭子綦)가 안석에 기대어 앉아 하늘을 우러러보며 한숨을 쉬니, 멍하니 그 짝을 잃은 듯했다. 안성자유(顔成子游)가 모시고 앞에 서 있다가 말했다. "어찌 된 일입니까? 몸은 진실로 마른 나무처럼 만들 수 있고, 마음은 진실로 죽은 재처럼 만들 수 있습니까? 지금 안석에 기댄 분은 옛날에 안석에 기대던 분이 아닙니다 ." 자기가 말했다. "언(偃)아, 네가 질문을 참 잘하였구나! 지금 나는 나를 잃어버렸는데(吾喪我), 네가 그것을 알겠느냐?"

 

 

隱几者,憑几也;㗳然者,無心之貌也。喪其耦者,人皆以物我對立,此忘之也。槁木者,無生意也。死灰,心不起也。今之隱几者,言今日先生之隱几,非若前此見人之隱几也。有我則有物。喪我,無我也,無我則無物矣。汝知之乎者,言汝知此理乎?吾即我也。不曰我喪我,而曰吾喪我,言人身中纔有一毫私心未化,則吾我之間亦有分矣。吾喪我三字,下得極好。洞山曰:渠今不是我,我今正是渠,便是此等關竅。

안석에 기댄다(隱几)는 것은 안석에 몸을 의지하는 것이며, 답연(㗳然)은 무심한 모양이다. 그 짝을 잃었다(喪其耦)는 것은 사람들이 모두 사물과 나(物我)로 대립시키는데, 여기서는 그것을 잊어버린 것을 뜻한다. 마른 나무(槁木)는 살아가려는 뜻(생의)이 없는 것이며, 죽은 재(死灰)는 마음이 일어나지 않는 것이다.

지금 안석에 기댄 자라는 것은 오늘의 선생이 안석에 기댄 것이 이전의 다른 사람이 안석에 기댄 모습을 보던 것과는 다름을 말한다. 내가 있으면 사물이 있고, 나를 잃으면 내가 없는 것이니, 내가 없으면 사물도 없다. 네가 그것을 알겠느냐(汝知之乎)는 것은 네가 이 이치를 아느냐고 묻는 것이다.

오(吾)는 곧 나(我)이다. '내가 나를 잃었다(我喪我)'고 하지 않고 '내(吾)가 나(我)를 잃었다(吾喪我)'고 한 것은, 사람의 몸속에 겨우 한 터럭만큼이라도 화하지 못한 사사로운 마음이 있으면 오(吾)와 아(我) 사이에도 분별이 생김을 말한 것이다. 그러고 보면 '오상아(吾喪我)' 세 글자는 정말 기가 막히게 잘 쓴 것이다. 선종의 동산(洞山,동산양개(洞山良价)) 선사가 "그것(물가에 비친 나의 모습)은 지금 내(나 자신)가 아니요, 나는 지금 바로 그(물가에 비친 나의 모습)로다"라고 한 것이 바로 이러한 요소다.

 

汝聞人籟而未聞地籟,汝聞地籟而未聞天籟夫!子游曰:敢問其方。子綦曰:夫大塊噫氣,其名爲風。是唯無作,作則萬竅怒號。而獨不聞之翏翏乎?山林之畏佳,大木百圍之竅冗,似鼻,似口,似耳,似,似圈,似臼,似洼者,似者。激者、者、叱者、吸者、叫者、者、者、咬者。前者唱于而隨者唱喁。泠風則小和,飄風則大和,厲風濟則衆竅爲。而獨不見之調調、之刁刁乎?

너는 인뢰(사람의 소리)는 들었어도 지뢰(땅의 소리)는 듣지 못했고, 지뢰는 들었어도 천뢰(하늘의 소리)는 듣지 못했구나 !" 자유가 말했다. "감히 그 방법을 묻고자 합니다 ." 자기가 말했다. "대개 대괴(大塊, 대지)가 숨을 내쉬는 것을 바람이라 부른다. 이는 일어나지 않으면 그만이지만, 일어나면 만 개의 구멍이 성나서 울부짖는다. 너는 저 윙윙거리는 바람 소리(翏翏)를 홀로 듣지 못했느냐? 산림의 험하고 높은 곳과 백 아름이나 되는 큰 나무의 구멍들이 코 같고, 입 같고, 귀 같고, 기둥 위의 가로막대 같고, 잔 같고, 절구 같고, 깊은 웅덩이 같고, 얕은 웅덩이 같다. 물 흐르듯 격렬한 소리, 화살 날아가는 소리, 꾸짖는 소리, 들이마시는 소리, 부르짖는 소리, 울부짖는 소리, 깊은 골짜기 소리, 새가 지저귀는 듯한 소리가 난다. 앞바람이 '우(于)' 하고 부르면 뒷바람이 '옹(喁)' 하고 화답한다. 산들바람(泠風)이 불면 작게 화답하고, 회오리바람(飄風)이 불면 크게 화답하며, 사나운 바람(厲風)이 그치면 모든 구멍이 텅 비게 된다. 너는 저 나무들이 흔들흔들(調調)거리고 나풀나풀(刁刁)거리는 모습을 홀로 보지 못했느냐?"

 

子綦因子游一問,知其亦有造理之見,欲以天籟語之,遂如此發問也。方,道也,問此理果何如也。大塊,天地也。天地之間因何有風?亦猶人之噫氣也。是唯無作,言其不作則已也。作則萬竅怒號者,言纔動則滿世界皆是也。萬竅,萬木之竅也。翏翏乎,長風之聲也。畏,音偉;佳,音翠。上畏佳者,林木動之貌。百圍,言木之大也,兩手相拏曰圍。上言萬竅,此但以一樹之大者言之,則其他可知,文法也。

大木之竅冗,其形之不同,各有所似。,柱上方木斜而深者。圈,如圈之圓者。洼曲者、下者,此皆言其竅冗之形。自激者至咬者,言竅冗中之聲。于之聲輕,喁之聲重,言風之前至,其聲如唱于,隨其後而至者,則如唱喁,輕重相和也。

泠風,小風也,風小則其相和之聲亦小。飄風,大風也,風大則其相和之聲亦大。厲風者,猛厲之風也。濟者,止也,風止,則衆竅之中,向之爲聲者皆不聞矣,故曰爲。調調、刁刁,皆樹木爲風所動之形。

前曰獨不聞,後曰獨不見,此一段文字之關鎖也。而,汝也。莊子之文,好處極多,如此一段,又妙中之妙者。一部書中,此爲第一文字。非特莊子一部書中,合古今作者求之,亦無此一段文字。詩是有聲,畫,謂其寫難狀之景也,何見畫得箇聲出?

自激者至咬者八字,八聲也。于與喁,又是相和之聲也。天地間無形無影之風,可聞而不可見之聲,却就筆頭上畫得出,非南華老仙,安得這般手段?每讀之,使人手舞足蹈而不知自已也。

此段只是地籟,却引後段天籟,自是文勢如此。者或謂此言地籟自然之聲,亦天籟也,固是如此。風非出於造化,出於何處?然看他文勢,地籟,且還他地籟,庶見他血脉綱領。

자기는 자유의 한 번의 질문으로 인해 그 또한 이치에 도달한 견해가 있음을 알고 천뢰로써 말해주고자 마침내 이와 같이 질문을 던진 것이다. 방(方)은 도(道)이니, 이 이치가 과연 어떠한지 물은 것이다. 대괴(大塊)는 천지이다. 천지 사이에 어찌하여 바람이 있는가?, 이는 또한 사람이 숨을 내쉬는 것과 원리가 같다. '이것은 일어나지 않으면 그만이다'라는 것은 일어나지 않으면 그뿐이라는 말이다. '일어나면 만 개의 구멍이 성나서 울부짖는다'는 것은 움직이기만 하면 온 세상에 가득함을 말한다. 만 개의 구멍은 만 가지 나무의 구멍이다. 료료(翏翏)는 긴 바람 소리이다. 외(畏)는 음이 '위'이고 가(佳)는 음이 '취'인데, 위취(畏佳)는 숲의 나무들이 흔들리는 모양입니다. 백 아름(百圍)은 나무의 크기를 말하니, 두 손을 서로 맞잡는 것을 위(圍)라 한다. 위에서는 만 개의 구멍을 말하고 여기서는 다만 하나의 큰 나무만을 들어 말함은, 다른 것들도 (이를 통해) 미루어 알 수 있다는 식의 문장이다.

큰 나무의 구멍은 그 형상이 달라 저마다 닮은 대상이 있다. 계(枅)는 기둥 위의 (가로댄) 네모난 나무로 비스듬하고 깊은 것이며, 권(圈)은 잔처럼 둥근 것이다. 와(洼)는 굽은 것이고 오(污)는 아래로 오목한 것이니, 이는 모두 구멍의 형상을 말한 것이다. 격(激)에서 교(咬)까지는 구멍 속에서 나는 소리를 말한다. 우(于) 소리는 가볍고 옹(喁) 소리는 무거우니, 바람이 앞에 이르면 그 소리가 '우' 하고 부르는 것 같고 그 뒤를 따라 이르는 것은 '옹' 하고 부르는 것 같아서 가볍고 무거운 소리가 서로 조화를 이룸을 말한다.

영풍(泠風)은 작은 바람이니 바람이 작으면 서로 화답하는 소리도 작고, 표풍(飄風)은 큰 바람이니 바람이 크면 서로 화답하는 소리도 크다. 여풍(厲風)은 사납고 격렬한 바람입이다. 제(濟)는 그침(止)이니, 바람이 이미 그치면 구멍 속에서 아까 소리를 내던 것들이 모두 들리지 않으므로 '텅 비게 된다'고 한 것이다. 조조(調調)와 조조(刁刁)는 모두 나무가 바람에 흔들리는 모양이다.

앞에서는 '홀로 듣지 못했는가'라 하고 뒤에서는 '홀로 보지 못했는가'라고 하였으니, 여기서 한 단락이 마무리된다. 이(而)는 너(汝)를 뜻한다. 장자의 문장은 좋은 곳이 지극히 많은데, 이 단락은 그중에서도 더욱 묘한 지점이다. 이 책 한 권 중에서 이것이 제일가는 부분이다. 비단 장자 한 권 중에서뿐만 아니라 고금의 작가들을 합하여 찾아보아도 이와 같은 문장은 없을 것이다. 시에는 소리가 있고 그림은 형언하기 어려운 풍경을 그리는 것이라 하지만, 어찌 소리를 그려내는 것까지 보았겠는가?

'격' 자에서 '교' 자까지 여덟 글자는 여덟 가지 소리이다. 우와 옹은 또한 서로 화답하는 소리이다. 천지간에 형체도 없고 그림자도 없는 바람, 들을 수는 있어도 볼 수 없는 소리를 도리어 붓끝으로 그려내었으니, 남화노선(장자)이 아니라면 어찌 이러한 솜씨를 얻었겠는가? 매번 읽을 때마다 참으로 자신도 모르게 끊없이 손을 춤추고 발을 구르게 한다.

이 단락은 다만 지뢰를 설명한 것인데 도리어 뒷 단락의 천뢰를 이끌어 설명하고 있으니 절로 문장의 형세가 이러하다. 해설하는 이들은 혹 이것이 지뢰의 자연스러운 소리이자 곧 천뢰라고 말하기도 하는데, 참으로 그러하다. 바람이 자연의 조화에서 나오지 않고 어디서 나오겠는가? 그러나 그 문장의 형세를 보면, 지뢰를 설명할 때는 우선 지뢰를 말해야 비로소 그 문맥의 원칙을 볼 수 있을 것이다.

 

子游曰:地籟則衆竅是已,人籟則比竹是已,敢問天籟?

자유가 말했다. "지뢰는 모든 구멍이 그것이고 인뢰는 대나무 대롱을 나란히 한 것(퉁소)이 그것인데, 감히 천뢰를 묻고자 합니다."

 

比竹,笙、簧之類也;人籟豈特比竹?金、石、絲、匏之類皆是,此特其一耳。地籟,後天籟,却把人籟只一句斷送了,此亦是文法。讀莊子之文,須如此子細檢點,庶得箇入處。

비죽(比竹)은 생(笙)이나 황(簧) 같은 종류인데, 인뢰가 어찌 다만 비죽뿐이겠는가? 금(金)·석(石)·사(絲)·포(匏)의 종류가 모두 이것인데, 여기서는 다만 그중 하나를 들었을 뿐이다. 앞에서 지뢰를 설명하고 뒤에서 천뢰를 설명하면서, 도리어 인뢰는 겨우 한 문장으로 끝내버렸으니 이 또한 하나의 문형이다. 장자의 문장을 읽을 때는 모름지기 이와 같이 자세히 점검해야 비로소 깨달음을 얻을 것이다.

 

子綦曰:夫吹萬不同,而使其自已也,咸其自取,怒者其誰耶?

자기가 말했다. "대개 만 가지로 다르게 불어대면서도 그것들로 하여금 저절로 나게 하고, 모두 스스로 취하게 하니, 격동시키는 자(怒者)는 과연 누구이겠느냐?"

 

吹萬,萬物之有聲者也。言萬物之有聲者,皆造物吹之,吹之者,造物也,而皆使其若自巳出。吹字、使字,皆屬造物。自取者,自取於己也。

咸其自取,言萬物皆以爲我所自能,而不知一氣之動,誰實使之?氣發於而爲言,遂下一怒字,與怒而飛同,亦屬造物。

취만(吹萬)은 만물 중에 소리가 있는 것이다. 소리가 있는 만물은 모두 조물주가 그것을 부는 것이니 부는 자는 조물주인데, 모두 그것이 마치 자신에게서 나오는 것처럼 만들었음을 말한다. '불 취(吹)' 자와 '하여금 사(使)' 자는 모두 조물주에 속한다. 자취(自取)는 자기에게서 스스로 취하는 것이다.

'모두 스스로 취한다'는 것은 만물이 모두 내가 스스로 능해서 그러한 줄로만 알고, 한 기운의 움직임을 과연 누가 그렇게 시켰는지는 알지 못함을 말한다. 기운이 안에서 발하여 말이 되므로 마침내 '성낼 노(怒)' 자를 아래에 썼으니, 이는 〈소요유〉의 '성을 내어 날다(怒而飛, 온 몸 안에 힘을 다해 날다)'의 노 자와 같으며 이 또한 조물주에 속한다.

 

<요약>

  • 「제물론」은 사람과 사물에 대한 여러 논의를 하나로 가지런히 하려는 뜻을 지닌 편명입니다. 전국시대의 다양한 학설과 시비를 넘어서, 장자는 옳고 그름의 대립을 잊고 자연으로 돌아가는 태도를 강조합니다.
  • 남곽자기가 안석에 기대어 앉아 마치 자신을 잃은 듯한 모습을 보이자, 안성자유가 그 까닭을 묻습니다. 이에 남곽자기는 “나는 나를 잃었다”고 말합니다. 이는 사물과 나를 대립시키는 분별심을 잊고, 무아의 경지에 이른 상태를 뜻합니다.
  • 이어 남곽자기는 인뢰, 지뢰, 천뢰를 설명합니다. 인뢰는 사람이 만든 악기의 소리이고, 지뢰는 바람이 나무와 구멍을 통과하며 내는 자연의 소리입니다.
  • 지뢰에 대한 묘사는 바람이 크고 작은 구멍들을 울리며 다양한 소리를 만들어 내는 장면을 매우 생생하게 표현합니다. 주석은 이 대목을 장자의 문장 중에서도 특히 뛰어난 부분으로 평가하며, 보이지 않는 바람과 소리를 글로 그려낸 탁월한 문장이라고 설명합니다.
  • 마지막으로 천뢰는 만물이 저마다 다른 소리를 내면서도 모두 스스로 그러한 듯 보이게 하는 자연의 작용을 가리킵니다. 만물은 자신이 스스로 소리를 낸다고 여기지만, 실제로는 조화의 기운이 그렇게 하게 만든다는 뜻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