以指喻指之非指,不若以非指喻指之非指也;以馬喻馬之非馬,不若以非馬喻馬之非馬也。天地一指也,萬物一馬也。
손가락을 가지고 '손가락은 손가락이 아니다'라고 비유하여 설명하는 것은, 손가락이 아닌 것을 가지고 '손가락은 손가락이 아니다'라고 비유하여 설명하는 것만 못하다. 말을 가지고 '말은 말이 아니다'라고 비유하여 설명하는 것은, 말이 아닌 것을 가지고 '말은 말이 아니다'라고 비유하여 설명하는 것만 못하다. 천지는 하나의 손가락이요, 만물은 하나의 말이다.
指,手指也。以我之指爲指,則以人之指爲非。彼非指之人,又以我指爲非。若但以我而非彼,不若就他身上思量,他又非我。物我對立,則是非不可定也。馬,博塞之籌也,見禮記投壺篇下馬有多寡,博者之相是非亦然。若以此理而喻之,則天職覆,地職載,亦皆可以一偏而相非矣。萬物之不同,飛者、走者、動者、植者,亦若籌馬之不同,亦可以一偏而相非矣。此蓋言世間無是非也,只緣有彼我則有是非,終不成天地亦可以彼我分乎?此皆譬物論之不可不齊也。
'지(指)'는 손가락이다. 나의 손가락을 기준으로 삼아 손가락이라 하면 타인의 손가락은 손가락이 아니라고 여기고, 저 손가락이 아니라고 여기는 사람 또한 나의 손가락을 손가락이 아니라고 여긴다. 만약 다만 나만을 옳다 하고 타인을 그르다 한다면, 저 사람의 처지에 나아가 생각해보는 것만 못하니, 그 사람 역시 나를 그르다고 여길 것이다. 사물과 나(物我)가 대립하게 되면 옳고 그름(是非)을 정할 수 없다. '마(馬)'는 도박 놀이에서 쓰는 말( 籌 )이다. 《예기》 〈투호〉편 아래를 보면 말(馬)에 많고 적음이 있음이 보이며, 도박하는 자들이 서로 옳고 그름을 다투는 것 또한 이와 같다. 만약 이러한 이치로써 비유한다면, 하늘의 직분은 덮어주는 것이고 땅의 직분은 실어주는 것인데, 이 역시 모두 한쪽으로 치우친 소견만을 가지고 서로를 그르다고 여길 수 있게 된다. 만물의 다름, 곧 나는 것(飛者), 달리는 것(走者), 움직이는 것(動者), 심겨 있는 식물(植者) 또한 저 놀이말(籌馬)의 다름과 같으니, 이 역시 한쪽으로 치우친 소견만을 가지고 서로를 그르다고 여길 수 있게 된다. 이는 대개 세상에는 본래 옳고 그름이 없는데, 다만 저것과 이것(彼我)의 분별이 있기 때문에 옳고 그름이 생겨나는 것임을 말한 것이니, 끝내 천지는 저것과 이것으로 나눌 수는 없지 않겠는가? 이것은 모두 사물에 대한 논론(物論)을 하나로 통일하지 하지 않을 수 없음을 비유한 것입니다.
- 손가락이나 말처럼 어떤 대상을 기준으로 삼아 “이것은 옳고 저것은 그르다”고 판단하면, 상대 역시 자신의 기준에서 나를 그르다고 할 수 있다.
- 따라서 사물과 나, 나와 타인을 대립적으로 나누면 옳고 그름은 고정될 수 없다.
- 하늘과 땅, 만물의 다양한 차이도 한쪽 기준에서 보면 서로를 부정할 수 있지만, 더 큰 관점에서 보면 모두 하나로 통한다.
- 결국 세상의 시비는 본래 절대적인 것이 아니라, 彼我의 구분과 편협한 관점에서 생겨나는 것이다.
- 그러므로 사물에 대한 여러 판단과 논의를 하나로 조화롭게 보아야 한다는 뜻이다.
이 글은 모든 시비와 분별이 상대적 관점에서 비롯되므로, 편협한 기준을 버리고 만물을 하나로 보는 관점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임희일(林希逸)의 《장자구의(莊子鬅意)》 번역'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임희일(林希逸)의 《장자구의(莊子口義)》 내편 제2편 〈제물론〉 11 (0) | 2026.07.14 |
|---|---|
| 임희일(林希逸)의 《장자구의(莊子口義)》 내편 제2편 〈제물론〉 9 (0) | 2026.07.10 |
| 임희일(林希逸)의 《장자구의(莊子口義)》 내편 제2편 〈제물론〉 8 (1) | 2026.07.07 |
| 임희일(林希逸)의 《장자구의(莊子口義)》 내편 제2편 〈제물론〉 7 (0) | 2026.07.06 |
| 임희일(林希逸)의 《장자구의(莊子口義)》 내편 제2편 〈제물론〉 6 (0) | 2026.06.29 |